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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외설.

category 씀/단상 2014.11.22 16:17
1. 삶에서 섹스는 격리해 두기 어려운 무언가다. 그러나 사회는 섹스에 대해 입이라도 뻥긋,할라치면 무섭게 돌을 던져댔다. 나는 결백해요, 나는 아무런 죄도 없어요,라고 말하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요즘은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섹스는 입 밖에 꺼내기 어렵다. 구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이 당대 미술계에 큰 파문을 던진지 한 세기하고도 반 세기가 흘렀지만 섹스는 아직도 죄악인 양 취급된다. 섹스를 다룬 이야기는 외설과 음란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청소년에게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된다. 그러나 왜- 섹스는 죄여야 하는가. 왜 자위를 한 다음에 성직자에게 달려가 고해를 바쳐야 하는가.

2. 얼마 전 내 페이스북 담벼락엔 <세상의 기원>에 대한 가장 숭고한 오마쥬가 전시되었다. 지난 여름 룩셈부르크의 행위예술가 드보라 드로베르티스가 바로 <세상의 기원> 앞에서 자신의 성기를 전시했던 영상이었다. 그의 행위에는 <기원의 거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는 곧장 경찰에게 끌려갔고, 그의 ‘노출행위’는 힐난과 박수를 함께 받게 됐다. 사람들은 물었다.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외설이냐고. 또 평면 안에서는 예술이던 것이 왜 공간 안에서는 외설 취급을 받느냐고. 그러나 내가 정말로 궁금한 건 왜 예술과 외설을 구분해야 하는가,였다. 예술은 예술인 동시에 외설일 수 있으며, 외설인 동시에 예술일 수 있다. 나는 <세상의 기원>을 보고 성욕을 느끼고 자위를 할 수 있듯이, 프로노그래피를 하나의 작품으로서 감상할 수 있다고 믿는다.

3. 외설은 성욕을 유발한다. 성욕을 유발하는 것들에 외설의 낙인이 찍힌다. 그러나 예술은 성욕을 유발하지 않는가. 성욕을 유발하지 않아야만 예술인가. 성욕은 무언가가 당신에게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느끼는’ 것이다. 짧은 치마를 입었다고 성욕을 유발한 책임이 여성에게 있다고 말할 수 없듯이, 당신이 느낀 성욕의 책임을 작품이 질 필요도 없다. 대체 애초에 성욕을 유발하는 것 따위가 어디 있다는 말인지. 나는 인간의 몸에, 태초부터 음란함이라는 도장이 찍혀있다는 순수한 발상을 신뢰하지 않는다. 음란함이 성욕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성욕이 음란함을 찾아내는 것이다.

4. 마광수가 <즐거운 사라>를 쓴 이후에 외설을 이유로 구속되는 촌극 이후 22년의 시간이 흘렀다. 장정일은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쓴 이후 법정에 섰고, 또 다시 그로부터 18년의 시간이 흘렀다. 박경신 교수가 자신의 블로그에 남성 성기 사진을 게시했다가 여론의 포화를 맞았다. 그가 <세상의 기원>을 블로그에 올린 후에는, ‘남성 성기 올렸던 교수가 이번엔 여성 성기를 올렸다’는 기사를 유력 일간지가 전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3년. <즐거운 사라>가,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박경신 교수의 블로그가, 지금 여기의 한국에서는 얼마나, 얼만큼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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