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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category 일상다반사/에세이 2014.04.12 22:45

맥주 캔을 막 땄을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또 스팸인가 싶어서 끊을까 했지만 “이 시간에…” 싶어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누구세요?” “어. 누굴까.” “누군데?” “누군데 이런 번호로 전화를 했을까.” 바보 같게도, 선문답이 몇 차례 오가고 나서야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인 걸 알았다.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친구라, 얼굴을 본 지도 6개월은 되었고, 목소리를 들은지도 그만큼은 되었는데. 다음 말을 궁금해 하며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에겐 큰 용건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도 그 용건이 궁금하지는 않았었다. 용건이 있어야만 목소리를 들을 사이는 아니니까. 한 30분쯤은 축구 얘기를 했던 것 같다. 토토 얘기를 하다가, 챔스 얘기를 하다가, EPL 얘기를 했다. 맨체스터 시티가 우승을 할지, 리버풀이 우승을 할지 얘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 친구는 시티의 팬이고, 나는 에버튼의 팬이니까. 5월에 곧 다가오는 맨체스터 시티와 에버튼의 경기를 함께 보기로 하고, 그렇게 나는 또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켰다.


그리고는 서로의 근황을 물었다. 그는 내게 요즘 하고 있는 고민과 계획을 말해줬고, 나는 그의 일이 잘 풀리기를 빌었다. 또 내가 일하고 있는 곳에서 이야기를 하고, 요즘 드는 생각들, 감정들, 기분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또 다시 맥주 한 모금.


옛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와 내가 처음 만났던 때. 즐거웠던 일들. 행복했던 날들. 그런 날을 이야기하며 그때는 너무나 불행을 쉽게 뱉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억팔이라도 좋다. 아마 몇 년이 지나도 쉽게 잊지 못할 기억이다. 그 친구는 곧 그런 날이 다시 올 거라고 말했다. 그랬으면 좋겠는데, 생각하며 다시 한 모금을 들이킨다.


어느덧 맥주 캔은 비워져가고, 통화시간은 40분을 넘었다. 좋다. 마치 그 친구와 맥주 한 잔을 하며 수다를 떤듯한 기분이다. 그냥 아무 일 없어도, 가끔 전화해서 서로의 근황이나 취미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또 행복한 일인지. 그래서 요즘은 더 많이, 더 자주 통화하고 싶다. 카톡 메시지 따위에 비하면 얼마나 가볍고, 또 얼마나 진중한가. 통화요금이 좀 많이 나올지라도, 뭐 어때. 나는 내 사랑하는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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