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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못함에 대한 어떤 시선들

category 씀/칼럼 2014.11.10 22:47

지난 8월, 사건사고가 너무 많았다. 특히 군대에서는. 윤 일병과 임 병장의 신음을 시작으로 터져나온 군 내의 부조리는 대한민국을 뒤덢었다. 특전사 소속의 한 중사가 후임 하사의 입에 휴대용 발전기의 전선을 물리는 전기고문을 한 혐의로 구속됐었다. 참으로 씽크빅한, 그 누구도 쉽게 하지 못할 가혹행위다 싶기도 하지만, 그가 하사들을 고문한 이유를 들어보면 기가 차다는 말만 나온다.


“임무 숙지가 미흡하고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서.” 한 마디로 일을 못해 그랬다는 거다. 28사단 집단구타 사망 사건 때도 이유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행동이 느려서. 말을 어눌하게 해서.” 일을 못하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게 군대인가 보다. 무섭다. (일을 못해서 죽였다는 말은 핑계라고 이야기들 한다. 그러나 그 말은 동시에, 일 못함이 사람을 죽일 핑계가 되는 게 어색하지 않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미디어는 군대 내 가혹행위에 대해 키보드 자판이 빠지게 떠들어댔다. 랜선은 분노로 불타올랐다. 군대에 대한 불신의 모니터링이 이어졌다.


그러나 묻겠다. 이게 과연 군대에서만 일어나는 일인가,하고. 당신들은 한 번도 그 가해자인 적이 없었냐고. 군대라는 공간과 조직의 특성 상, 사건이 좀 더 변태적이고 가혹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지만, 실은 이런 ‘죽임’은 사회에 만연한 일이다. 군대에서는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폭행이 사회에서는 은밀하게, 또 은연중에 이루어질 뿐이다. 군대에서는 주먹으로, 발로, 폭행으로 죽이지만, 사회는 일 못하는 사람을 시선으로 또 언어로 때려 왔다. 페이스북 그룹 <일못하는 사람 유니온>의 글들은 그래서 웃프다. 그 시선으로 입은 상처를 드러내는 데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에 대해 가감 없이 이야기 한다.


하지만, 일못함에 대한 이런 시선은 부당하다. 일못함이 ‘이상’하고 ‘비정상적’인 것이라면, 우리는 모두 다 ‘이상’하고 ‘비정상’적인 사람일 것이다. 모든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없다. 간혹 나타나는 그런 사람이 천재 혹은 괴짜라고 불리지. 모두가 모든 영역에서 일을 잘 해 낼 수는 없는 법이다. 모두가 천재가 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없는 현장에 ‘내던져진’ 이들이 일 못하는 사람으로 불리고, 뒤에서 또 앞에서 비난받게 되는 것이다. 일 못하는 사람은 태어나지 않는다. 만들어질 뿐. 군대도 마찬가지이고,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일머리가 좀 나쁘고, 말귀를 빠릿빠릿하게 알아듣지 못하는 게 그토록 죽일 죄인가. 그런 류의 조직생활에 몸이 익지 않은 이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입대하자 마자, 입사하자 마자 척이면 척, 다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직장에 처음 출근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하던 경험, 아마 다들 있을 것이다. 선배는 뭘 물어봐도 바쁘다고 대답 안 해줘, 시킨 일을 해도 이게 재대로 하는건지 아무도 안 가르쳐줘. 얼타고 있으면 이것도 제대로 못하냐, 하고 싶어하는 사람 줄 섰으니 나가라는 말에. 어리버리했던 나의 모습에 <미생>의 장그래가 잠깐 겹쳤다가 사라진다. 후배에게, 신입에게 일 하나 가르치지 못할 정도의 바쁨. 결국엔 ‘알아서, 잘’ 배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과연 ‘알아서,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눈치가 빠르고, 일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닐지라도, 천천히 일을 배우다 보면, 능숙하게 해내게 되어 있다. 그러나 자본의 시계는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속도자본주의가 불러온 사무실의 풍경은 일못함을 양산해 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일 못해도 괜찮아,”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다만 무엇이 일 못하는 사람을 만들어내는지를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 못하는 사람을 찍어내고 그 중 일 잘하는 사람을 찾아내 양분하고 구별 짓는 구조는 더 이상은 naver,.. 협력보다는 경쟁이 중요해진 사회, 평가와 차별이 당연해진 사회에서 일 못하는 사람은 무슨 벌레인 양 취급되어 왔다. (나는 누가 일못충이라는 조어를 만들어내도 전혀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일 못함은 지금까지 쭉 터부였다. 교정의 대상이었고, 자본주의 시대의 금기였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의 일 못함을 드러내고, 일 못함과 그것을 공장에서 상품과 함께 만들어진 폐수인 양 취급하는 사회에 대해 이야기해 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생각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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