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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이 무의미한 이유

category 봄/리뷰 2014.09.30 23:59

모두가 평론가1)인 시대다. 동시에, 어쩌면 그렇기에, 아무도 비평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영화평론에 대한 ‘메타비평2)’은 대다수가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끝나고, 평론가의 자리는 대중의 냉소에 두들겨 맞는다. 대게 “네가 뭘 아냐. 영화는 우리가 선택하고, 우리가 선택한 영화만이 좋은 영화이며, 옳은 영화이다”라는 식이다. 영화 평가의 기준은 별 하나부터 다섯까지라는 비좁은 은하계에 틀어 박혀 있다.

 

‘왓챠’ 같은 대중평론의 데이터베이스는 영화를 오직 별점으로만 평가한다. (혹은 오직 별점만이 남는다.) 나는 다수 대중3)이 평론가가 되는 것이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대중이 영화평론의 장에 뛰어 들고 영화에 대한 서로의 감상을 공유하는 것은 한국 영화의 발전에 꽤 괜찮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믿는 편이다. 그러나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영화의 평가는 잊혀지고, 오직 별점만이 남는다는 데 있다. 아, 이건 별 ...하나 짜리 영화. 그러니까 나쁜 영화. 아, 이건 별 다섯 개 짜리. 재밌겠구나. 과연 이런 채점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시험시간을 생각해보자. 당신이 무척 좋아하는 과목의 시험 시간이다. 당신은 아주 정성들여 지금까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고뇌해 온 바를 적어낸다. 아마 당신은 채점자의 의견과 본인의 생각에 대한 동조 혹은 반대의 의견이 담긴 짧은 코멘트라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빨간 색연필로 대충 점수만 휘갈긴 점수뿐이라면? 아마 당신의 답안지가 어디서 어떻게 왜 ‘틀렸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동시에 당신은 그 생각이 발전할 기회를 잃게 된다.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결과적으로 별점은 제작자가, 연출가가 영화를 발전시킬 기회를 잃게 만드는 것이다.

 

정성일 영화평론가는 팟캐스트 <진중권의 문화다방>에 출연해 ‘별점을 매기는 순간 영화의 생명은 끝난다’고 지적했다. 나도 그의 생각에 크게 동의한다. 별 하나부터 다섯까지의 좁디 좁은 기준은 영화의 어떤 부분도 평가해주지 못한다. 영화는 오로지 별로만 기억되고, 별점과 영화의 수준, 완성도는 동의어가 된다. 이를테면, 내가 마블 스튜디오의 <어벤져스>와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에 똑같이 별 네 개를 메겼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이 두 영화는 같은 수준과 같은 완성도를 가지고 있는 영화라고 말 할 수 있을까? 누구도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격하게 말하자면, 이 채점놀이는 왓챠가 채점자의 취향을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영화의 발전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더 좋은 영화를 보고 싶다면, 또 한국영화의 발전을 원한다면 채점자가 아니라 비평가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별 다섯의 매뉴얼로 만들어진 영화를 보고 싶다면, 채점을 계속해도 좋을 것이다.

 

1) 그것을 평론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2) 마찬가지로 그것을 비평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3) 역시 대중이라고 불릴 수 있는 집단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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