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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강권하는 사회

category 씀/피쳐 2016.03.06 18:22


스무 살이 되던 날, 다니던 학원의 강사들, 또 동급생들과 함께 술집에 갔다. 처음이었다. 소주를 마셨다. 맥주를 마셨다. 소맥을 마셨다. 술게임을 배웠다. 술을 마시기 위한 게임. 그러니까,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술을 마시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얼마나 마셨을까. 그 안의 모든 공기가 알코올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마셔야 했다. 대학에 가면 다 하는 거라고, 미리 적응을 해야 한댔다. 아무도 묻지 않았다. 그걸 왜 대학에 가면 다 해야 하는 거지.


수강신청 등에 필요한 정보를 준다는 새내기 예비대학이었다. 선배들은 자연스레 주량을 물었고, 때론 자신의 주량을 자랑처럼 이야기하곤 했다. 대화는 잠시 술게임이 이어졌고, 나는 졌고, 마셨다. 마셨다. 마셨다. 새터에 가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새터는 그러니까, 음, 한 방에 앉아 좀 더 길게 마신다는 차이점이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대체, 이거 왜 마시는 거지.


학교생활 중에도 술은 빼놓을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MT, 조모임, 워크샵, 시험, 그 모든 것의 끝에는- 술이 있었다. 자연스러웠다. 모든 일에는 뒤풀이가 있었고, 모든 뒤풀이에는 술이 있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못하는 이를 위하는 자리는 없었다. 캠퍼스의 낭만 속에는 드넓은 잔디밭 위에서 즐기는 맥주 한 잔이 당연하듯 했고,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은 ‘분위기 못 맞추는 애’, ‘이상한 애’ 혹은 ‘사회성 없는 애’ 정도로 취급받았다.


대학은 술이다?


올해도 술은 끊이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술 먹이기가 끊이지 않는 거지만. 더 못 마시겠다는 후배에게 술을 억지로 먹이고, 선배의 각종 개인정보를 외우게 해 못 맞추면 먹이고, 선배의 뺨을 때리게 해 못 때리면 먹이고, 못 마시겠다면 개새끼라 욕하며 먹이고. 먹이고, 먹이고, 먹이고, 먹이고. ‘그렇게 먹인 놈들이 사열 종대 앉아 번호 연병장 두 바퀴쯤’ 될까. 무슨 공공의 술도 아니고.


술은 자연스러웠고, 술을 안/못 마시는 이들은 부자연스러웠다. 강권은 있는 듯 없는 듯 어디에나 있었다. 언제나 권위를 가진 쪽은 선배였고, “안 마셔도 돼.”라고 말해도 후배는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음, 그러니까 국정원이 국민을 감시하지 않을 거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것을 믿을 수 없는 국민들과 같은 심정이랄까. 결국, 술을 마셔야 할 것 같은 분위기. 술을 마셔야 했다.


차라리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만 있었어도 좀 나았을 거다. 그러나 술은 예의였다. “진짜 못 마셔요.”라는 말 뒤에는 “마시다 보면 늘어.”라는 답이 있었고, “약 먹어서 못 마셔요.”라는 말 뒤에는 “오늘은 약 먹지 마.”라는 말이 따라 왔다. 아마, 어떤 상황이더라도 그들은 술을 먹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행여나 술잔을 거부하면, “얘가 분위기 이상해지게. 다 친해지자고 하는 거 아니야. 너 그러다 사회생활 어떻게 하려고 그래?” 따위의 말이 들렸다.


술 강권하는 사회


너 그러다 사회생활 어떻게 하려고 그래. 그렇다.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술을 마시지 않고서 사회생활을 하기 무척 어려운 나라다. 비단 대학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사회 전체가 그렇다. 한국 남성 두 명 중 한 명은 월 한 번 이상 폭음을 하고, 다섯 명 중 한 명은 이미 고위험군에 속해 있다는 통계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음주가무가 덕목이요, 충성에 대한 증명이니 회사에 오래 또 잘, 발붙이고 싶다면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다. 쓰린 속을 부여잡고 숙취에 시달리며 하는 업무가 잘 될 리도 만무하다. 회식을 통해 소통을 하고 피로를 푼다는 것도 헛소리에 불과하다. 알코올이 이미 중추신경을 마비시켰는데, 대체 어떤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는 걸까.


술은 회식을 넘어 그 자체로 업무가 되어 버렸다. <미생>이나 <내부자들>의 장면을 하나하나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접대와 회식, 음주와 가무는 일상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누가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강권은 그 자체로, 폭력이다. 우리네 ○장님들은 “그래도 술은 있어야지.”라고 입이 닳도록 말씀하시지만.


술 없어도 괜찮아


그게 정말일까. 그래도 술은 있어야 할까. 어느 정도 맞는 말일 수 있다. 한국의 ‘노는 문화’라는 건, 사실상 대부분 술로 수렴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딜 가나 술집은 차고 넘치지만, 그걸 무엇으로 대체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효과적인 대체수단이 눈에 띄지도 않으니까. 술은 어쩌면, 대한민국의 놀 거리 그 자체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엇으로도 술을 대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일부 대학을 중심으로 술 문화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뒤풀이 자리에 술 대신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든지, 술을 마실 사람과 마시지 않을 사람을 나누어 뒤풀이를 진행한다든지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술이 없으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기 전에, 술을 대체할 방법을 먼저 찾아야 한다. 그 가능성은 이미 여러 곳에서 증명되고 있다.


술을 마시지 말자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마시고 싶으면 마셔라. 그러나 그걸 타인에게 권하지는 말라. 특히 마시지 않겠다는 사람에게는 더욱더. 권하는 술을 마시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술을 권하지 않는 것이 예의다. 술은 위험하다. 그 선을 지키기란 쉽지 않다. 술을 마시지 않고도 가까워질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구태여 그 의존성과 중독성이 강한 에탄올 진정제에 몸을 잔뜩 담글 필요가 없는 이유다.


PS. 그리고 이 글을 빌어, 몇 주전 회의 뒤풀이에서 마시지 않겠다던 부라더 소다를 억지로 먹인 모 씨에게 사과를 전한다.


이 글은 ㅍㅍㅅㅅ(링크)와 오마이뉴스(링크)에 개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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